10억, 10억짜리 영화일까, 10원짜리 영화일까?
아니, 이 영화는 도대체 뭐지?
영화를 평가할 때 항상 고민이 되는 것은 ‘이 영화를 관대하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분명히 주관적이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 색깔, 배우, 감독 등에는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인데요. 그 뿐만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독립영화 어드밴티지’도 있구요, 어디서 상이라도 받은 영화라면 분명히 ‘별로’였는데 이게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가늠이 안 돼서 있는 해석, 없는 해석 다 갖다 붙이고는 ‘엄청나게 심오한 영화’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평가가 힘든 것은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야’라는 심정으로 황당하게 본 영화의 경우인데요. 소위 막장영화이긴 한데, 이게 대놓고 막장인지(그래서 감독의 의도적인 막장에 뭔가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는지), 아니면 이상하게 찍어서 막장인 것인지 가늠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드라마의 경우 대놓고 막장 드라마를 표방했던 ‘아내의 유혹’. 이 드라마는 대놓고 막장을 보여주며 인기몰이에 성공했죠. 이 경우에는 대놓고 막장인 것이 구분이 가니 평가 또한 쉽게 내릴 수 있겠는데요.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 프루프’. 워낙 감독의 명성이 대단해서 뭔가 의미가 있겠지 싶기도 하고 호평도 많이 받았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 영화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전혀 이상한 인과관계를 따라가는 스토리 전개라든지, 영화기법도 일관성이 없고 뒤죽박죽. 특유의 표현주의 기법이라고 하기엔 또 그것도 미흡한. 내공이 부족한 저로서는 솔직히 이 영화가 어떤 작품성이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왜 이렇게 장황하게 이런 얘기들을 하느냐. 바로 두 달 전 개봉하고 흥행에 실패한 ‘10억’이라는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인데요. 이 영화에 대한 저의 복잡한 심정을 이렇게 장황하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장황하게 그러지 말고 그냥 짧게 말하라구요? 뭐, 알겠습니다. '10억' 영화포스터
“도대체 이 영화는 뭐지?!!!”
10억은 정말 못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심오한 무언가가 담긴 것일까...?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10억이라는 상금을 건 서바이벌. 10명의 참가자가 이 돈을 걸고 펼치는 죽음의 미스터리 게임. 그리고 이를 카메라로 찍어 고작 UCC에 방영하는 이상한 PD. 주제는 물론 스토리도 어색하고 배우들도 캐릭터를 못 잡아 연기가 분분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화면에 담긴 영상들도 뭔가 묘하게 어색한 구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못 만든 영화죠. 그렇긴 한데…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쉬운데 마음 속에 드는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박해일, 박희순, 신민아, 이민기, 이천희, 정유미, 고은아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 이 영화가 누가 봐도 이상한 영화라면 이들은 왜 이 영화를 고른 걸까요?(무엇보다도 영화 잘 고르기로 소문난 정유미가 왜?) 또 있습니다. 국내 첫 호주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엄청난 규모의 돈이 들어간 영화. 어째서 그 많은 돈을 블록버스터도 아닌 영화에 썼는데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 있지…? 뭐 이런 의문들을 스멀스멀 생각하다 보면 자꾸만 감독의 고차원적인, 심오한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전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신민아, 정유미, 고은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그보다도 뭔가 황당해하면서 계속 피식피식 웃으며 즐겁게 봤죠. 이 재미의 성격을 굳이 얘기하자면, 마치 무한도전 멤버들이 어설프게 찍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영화에 대한 리뷰를 남기면서 이렇게나 아리송한 기분이 드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요. 자, 여러분. 이 영화 꼭 보십시오. 그리고 저한테 좀 알려주세요. 도대체 이 영화, 정체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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